[한겨레]
"나는 5타수 무안타" 자조
월세 밀리고 가스 끊긴채
병마와 굶주림에 시달려
단칸방에는 채 마르지 않은 수건이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온기는 느낄 수 없었다. 이미 가스가 끊긴 지 오래여서 음식을 해 먹은 흔적도 없었다. 마실 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설을 앞둔 지난달 29일, 유망한 예비 시나리오 작가 최아무개(32·여)씨는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의 월셋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미 몇 달째 월세가 밀린 상태였다. 형편을 딱히 여긴 인근 상점 주인들이 외상을 주기도 했지만 최씨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깡마른 상태로 숨진 최씨를 발견한 사람은 같은 다가구주택에 살던 또다른 세입자 송아무개(50)씨였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최씨는 사망 전에 송씨의 집 문 앞에 이런 내용의 쪽지를 붙여놓았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송씨가 음식을 챙겨 왔지만, 이미 최씨의 몸은 싸늘해진 상태였다. 최씨가 누운 자리 옆으로 열이 식은 전기장판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동네 주민들도 최씨의 모습을 본 지 사나흘이 지났을 때였다.
송씨의 신고를 받은 안양시 만안경찰서는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던 최씨가 수일째 굶은 상태에서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씨가 일하던 영화계에 이런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그의 지인들 사이에서는 최씨를 열악한 환경으로 내몬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탄식이 쏟아졌다. 극소수를 제외한 예비 영화인들은 생계조차 이어가기 힘든 대우를 참아내야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씨의 선배인 한 현역 영화감독은 "신인 작가들은 2000만원 정도인 계약금의 극히 일부만 받고 시나리오를 일단 넘긴 뒤 제작에 들어가야만 잔금을 받을 수 있다"며 "제작사가 좋은 시나리오를 묶어두기 위해, 기약도 없는 제작 일정까지 작가 같은 약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씨는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화과(시나리오 전공)를 졸업한 뒤 실력을 인정받아 제작사와 일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 영화 제작까지 이어지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려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최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영화화된 것으로 보면) 나는 5타수 무안타", "잘 안 팔리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지난 1일, 박종원 한예종 총장과 이창동, 김홍준 교수를 비롯해 한예종 영상원 동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충남 연기군에 있는 은하수공원에서 최씨를 화장했다.
최씨를 아꼈던 선후배들은 그가 직접 쓰고 연출한 단편영화 < 격정소나타 > 상영회와 유작 시나리오 읽기 등 추모 모임을 열 예정이다.
최씨의 작품을 좋아했다는 후배 작가 윤아무개씨는 트위터에 추모글을 남겼다. "그녀의 < 격정소나타 > 는 단편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내겐 훌륭한 참고서 같은 영화였다. 언젠가 판을 기웃거리면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가 구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행복하시기를."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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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을 수 없어서 명절이 두려운 사람들이 존재하는 나라.
점심을 먹을 수 없어서 방학이 두려운 아이들이 있는 나라.
굶주림의 사회저변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나라.
너무 먹어서 여기저기 비만크리닉이 판치는 나라.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나라.
그러나 타인의 삶에 철저하게 무심한 나라.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극단적인 양극화와 무관심, 그리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무서운 이기주의와 맹목성이라느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위의 작가는 자신의 궁핍한 처지를 분명 주변의 친지나 지인 또는 선후배에게 직간접으로 호소를 하거나 언급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돌아온 것은 냉대와 평가절하된 말도 안되는 삶의 조언이었을 것..... 배고픈 사람에게 고기를 줄것이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야 된다고 하지만, 허기는 일단 면하고 최소한의 삶은 유지시키는 가운데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는 조금 시야를 달리하는 사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