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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에도 등급이 있을까요...이런 사랑의 급수는 어느정도 인가요..??
    세상살이 2008. 5. 1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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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까지 함께하는 사랑

       환자의 사도, 문둥이 성자로 불리는 다미안 신부는 1840년 벨기에에서 태어났습니다. 1860년 해외선교를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는 예수와 마리아의 성심 수도회에 입회하여 ‘다미안’이란 수도명을 받고 1864년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1865년 하와이 군도에 나병환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감염된 환자를 몰로카이섬에 격리수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으로 옮겨진 나환자들의 참상을 전해 들은 다미안 신부는 33세의 나이로 몰로카이섬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12년간 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들이 숨을 거두면 그는 살이 짓뭉개진 육신을 앞에 놓고 기도하였고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관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다미안 신부는 목욕을 하려고 물을 데우다 실수로 뜨거운 물을 발등에 쏟았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끓는 물에 데었는데 아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감각의 상실, 그것은 확실한 나병의 증상이었습니다. 다미안 신부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다미안 신부가 내린 결론은 “주님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도 저들과 같이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도 저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들도 알 것입니다. 제가 저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을 감사하는 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자신이 받는 고통도 하느님의 예비된 사랑이라고 받아들이는 이 기도야말로 하느님을 향한 순명의 목소리이며 믿음의 음성입니다. 그 후 그는 4년간 몰로카이섬에 가득한 나환자들을 돌보다 쓰러져 결국 그 섬에 묻혔습니다.


       우리는 핑계거리만 있으면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저 역시 사소한 병을 이유로 제가 있어야 할 곳을 떠나온 사람입니다. 다미안 신부처럼 고통 속에서 고통과 함께 썩어서 그 고통의 깊은 곳에 묻히지 못하고 더 편한 곳, 더 나은 곳을 찾아 자리를 옮기며 살고 있습니다. 다미안 성인의 말처럼 “사랑은 함께 있는 것만으론 안 되고 고통까지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오늘도 고통 앞에서 비겁했습니다. 다미안 성인을 생각하며 안온한 길만을 선택하며 산 하루치의 삶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 도종환 진길 아우구스티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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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안함만을 추구하도록 학습된 머리속에서 참사랑의 희생을 집어넣기가 몹시 힘이듭니다.과연 내가 할수있는 만인에 대한 작은 희생은 무엇일까...과연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무엇일까...작은 실천을 혹시 나도모르게 자랑하면서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제대로 살기가 쉽지안습니다.
    작은 배려와 웃음 그리고 가벼운 친절이 결코 사소하지 않게 사회적인 사랑과 분위기가 되어서 우리의 곁에 다가온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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