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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사람들은 줄고, ‘모여 사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가족끼리, 성향이 맞는 친구끼리, 혹은 절친한 회사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것은 새로운 이웃을 사귀는 것보다 부담이 적으면서 안정감을 주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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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끼리 모여 사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케이스를 찾다보니 같은 동네에 일가가 모여 사는 경우는 비일비재했고, 자매끼리 일부러 한 아파트 같은 라인에 집을 구한 경우도 있고, 교외에 땅을 사서 나란히 집을 지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재밌는 것은, 딸이 많은 가족에게서 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주로 ‘친정’ 쪽 식구 위주로 모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여 사는 것은 아무래도 진정 마음이 편한 사람끼리, 자발적이래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급 주택가로 유명한 평창동. 주택들이 하나 둘 빌라로 바뀌어가고 있는 그곳에서 좀 특이한 빌라를 발견했다. 4층으로 된 ‘인강재’. 빌라라기보다는 일반 주택처럼 대문이 있었고, 앞뒤로 마당이 있었다. 하지만 인강재가 주변 빌라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각 층에 사는 네 가족이 모두 한가족이라는 것. “1층엔 친정부모님, 2층엔 남동생네, 4층엔 언니네가 살고 있지요.” 3층에 사는 셋째딸 김화영 씨의 말이다. 둘째언니는 현재 외교관인 남편과 쿠웨이트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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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재는 고도 제한 때문에 4층까지밖에 지을 수 없었는데, 1층은 지상보다 약간 낮게 해서 아늑함을 주고, 대신 4층은 천장을 높게 해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제비뽑기로 각자 몇 층에 살 것인가를 정했는데 1층만은 예외였다. 당연히 부모님 몫으로 미리 빼둔 것. 1층은 지상보다 낮아 답답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선큰 공간을 활용해 운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푸릇푸릇한 정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1층 거실은 역시 부모님의 연배에 어울리는, 붓글씨 액자와 난 화초, 가죽 의자 등으로 중후하게 꾸며져 있었다. “모여 사니까 얼마나 좋은데요. 손자들도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고, 집 비울 때도 걱정 안 되고. 애들이 맛있는 것 만들면 매번 가져다 주고. 나야 참 좋지~.” 어머니 이정순 씨의 말이다. 2층은 4층만큼 시원하게 뚫린 전망은 아니지만, 정원수가 보이고 건물을 타고 자란 능소화 등 전망이 아기자기한 곳으로,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김화영 씨의 남동생네가 살고 있다. 메인 가구가 심플하다보니 집 안이 전체적으로 모던한 스타일. 코너코너에 앤티크 스타일 가구를 두어 우아한 기분이 들게 꾸몄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과 여섯 살 딸아이를 둔 남동생네는 구기동에 살다가 입주했다. 아내 입장에선 시댁 식구들과 모여 사는 것이니 약간 ‘심정’이 다를 듯싶었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남편이 외동아들인데다 부모님께서 연로해지시니 그렇지 않아도 내내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에요. 형님들도 함께 있으니 더 고맙죠.”
1 대나무로 꾸민 1층의 선큰 공간 선큰(sunken : 지하 1층이지만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으로 열려져 빛이 들어오는 공간. 이곳에는 보통 나무를 심거나 연못을 만든다) 공간에서 대나무를 손질하고 있는 어머니 이정순 씨. 2 1층 거실에서 주방 쪽을 바라본 모습 살짝 반지하인 1층은 앞마당과 뒷마당 쪽에 선큰 공간을 만든 뒤, 흐르는 분수와 대나무를 심어 운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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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은 셋째딸인 김화영 씨네가 사는 집.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둔 그녀는 이전에 대치동에 살았었기에 입주할까 말까 고심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이곳의 교육 환경도 그리 나쁘지 않고, 가족들과 모여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거라 믿었단다. “이전 집에 비하면, 우선 집이 넓어졌고, 친구들하고 놀 시간도 더 많아졌어요.” 큰아들 정현이의 말이다. “급한 일이 생기거나 가끔 나갔다가 귀가가 늦어질 때는 언니나 친정어머니 또는 올케에게 전화해서 애들 좀 챙겨달라고 부탁하곤 해요. 밥이 없을 때 급하게 밥 한 공기 얻으려고 가기도 하고요. 애들이 좀 더 어려서부터 함께 모여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눈이 탁 트이는 시원한 전망과 높은 천장이 특징인 4층은 이미 다 자란 대학생 아들 둘이 있는 큰딸 김선영 씨네 집이다. 다락방을 만들까 하다가 차라리 천장을 높게 만든 것인데, 이 때문에 다른 집과 구조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달라 보인다. “외아들인 남동생에게만 부모님을 모시게 하면 부담스럽잖아요. 딸들도 모여 살면서 그 부담을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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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층에서 본 전망 2층의 전망은 시원하진 않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수와 꽃나무로 아기자기하다.
2 2층 주원이 방 1층부터 4층까지 전체적인 구조는 같다.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은 집주인의 요구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2층 주원이의 방 책상은 집을 지을 때 짜맞춤을 부탁해 붙박이로 만든 것. 전체적으로 통일된 느낌을 준다. 3 2층 희원이의 침실 침실 맞은편 방은 딸 희원이의 방. 앤티크풍으로 꾸며 무척 사랑스럽다. 월너트 몰딩과도 썩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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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관에서 바라본 복도 4층은 천장이 높은 만큼 웅장한 맛이 있다. 복도를 중심으로 왼쪽이 거실, 오른쪽이 주방이다. 안방과 아들들의 방은 복도 안쪽 끝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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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안방 안의 침실, 3층 안방 전경 안방 안에 침실이 따로 있는 구조. 3층 김화영 씨네는 바깥쪽 방에는 1인용 의자와 TV, 피아노를 두고, 침실에는 깔끔하게 침대만 두었다. 침대는 집 지을 때 붙박이로 짜 넣은 것.
6 3층 아이들 공부방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마주치는 방. 네 집 다 서재 혹은 공부방으로 사용 중이다. 7 3층 주방 전경 주방은 긴 병렬형으로 디자인되었다. 체리 몰딩에 맞춰 체리색 문짝으로 마감, 매우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주방 가구는 F Living 제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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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층 거실 전경 붓글씨 액자, 난초, 고풍스런 가구 등등. 한눈에도 어른들이 사는 집이다. 이전 집 정원수를 활용해 다시 꾸민 정원의 조경이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2 2층 거실 전경 심플한 스타일의 ‘ㄱ’자 가죽 소파. 월너트 몰딩과도 썩 잘 어울린다. 3 4층 거실 전경 다른 거실과 다른 점이라면, 천장이 높다는 것과 복도와 거실 사이에 가벽을 댔다는 것. 천장이 높은 만큼 썰렁해질 수 있는데, 대신 가벽을 대서 살짝 아늑한 기분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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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층 현관 전경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바로 보이는 부분. 창턱에는 작은 조명이 놓여 있고, 도자기통에는 우산이랑 지팡이가 꽂혀 있다. 지팡이가 다양한 것을 보니, 아버님이 상당한 멋쟁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2 2층 현관 전경 멋진 화분 받침대에 잎이 풍성한 화분을 두어, 현관을 화사하게 꾸몄다. 집 안을 구경하기도 전부터 집이 예쁠 것 같다고 확신했던 건 바로 이 현관 꾸밈 때문이었다. 3 4층 현관 전경 똑같은 자재, 똑같은 디자인이더라도 집주인의 취향에 따라, 꾸밈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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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간에 모여 살자는 얘기는 진작부터 있었는데 작년에 마침 그럴 계기가 생겼어요.” 1981년, 평생 살 요량으로 직접 집을 지어 평창동으로 이사 오신 부모님. 잘 지어졌다고 소문났던 그 집이, 지어진 지 20여 년이 지나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시공 당시만 해도 평생 문제 없다던 파이프가 노쇠하고, 그 이음새가 누수되면서 전면적인 공사가 필요하게 되었던 것. 공사비가 거의 웬만한 집을 짓는 수준이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번 기회에 주택을 철거하고, 그곳에 모여 살 집을 짓자고 의견을 모았다. 처음에는 설계와 시공을 모 회사에 맡겼었는데 무성의한 면이 있어서 결국 뉴욕의 ‘파슨스 스쿨 오브 디자인’ 출신 건축가인 셋째 사위가 다시 작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집을 설계할 때 가장 신경 쓴 것은 가족간 ‘독립적일 것’, 그리고 가족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것, 이 두 가지였다고 한다. 현관문도 각각 따로 있고, 집마다 조금씩 인테리어 느낌이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 “등기도 층마다 각각 따로 했어요. 땅을 새로 살 필요는 없었기에 건축에 든 비용을 1/4로 나눠 부담했고요.”
한 집에 같이 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단점’이 부각되기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경우가 90%. 반면, 모여 사는 것은 그나마 각자의 공간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서로의 ‘좋은 점’만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 경우 ‘개인 공간’을 존중해주려는 각자의 노력은 기본이다. 입주한 지 딱 1년. 지난 1년은 이들 스스로 생각해봐도 정말 문제없이 보낸 기간이다. “모여 산다고 해도, 자주 모임을 갖거나 식사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요. 심할 때는 계단에서 한 번 만나기나 할까. 각자 일에 바쁜 사위들은 보통 그렇죠. 모임은 구성원 중에 생일이 있다거나 행사가 있을 때 밥을 먹거나 조촐한 파티를 하는 정도죠. 한 달에 한두 번이나 될까? 평소에는 대부분 각자의 집에서 다 해결해요.” “행사가 있을 땐 주로 각자 음식을 한두 개씩 해 가지고 1층으로 내려가지요. 그러면 서로 부담 안 주고, 편하기도 하고요.” “우리 식구들 성격을 보면, 매번 우루루 몰려다니기보다는 각자 알아서 하는 스타일들이죠. 그런 점이 모여 살 땐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다 모이면 아버님께선 언제나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 너희가 서로 신경 쓰도록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세요.” 만약 ‘모여 살고 있다면’ 혹은 ‘모여 살’ 계획이라면,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할 말들이다. 디자인 시공 관련 문의 JD International(02·379-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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