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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중근 의사를 기억해라
    반드시해라 2007. 12. 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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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광복절이라는 것이.. 왜냐하면 광복자체가 외세에 의해서 나라를 빼았긴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조상들이 원망스럽기고 합니다.당파싸움과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세계정세를 읽지못하고 후손들의 피로 이 땅을 물들게 했으니까요..


    근원적이고 본원적인 문제야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이 땅을 다시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조신 수많은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 분들에게는 고마움을 느낍니다.대한독립군 의군중장 안중근, 독실한 기독교신자이기도 했던 그는 항상 인간적인 삶과 독립운동의 경계선상에서 자신의 길을 올곧게 가기 위해 고민하고 번민하였습니다. 의사 안중근에 대해서는 연극과 영화 그리고 각종 기록물을 통해서 우리가 익히 배우고 알아오고 있습니다만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지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중근의사의 인간적인 모습 가운데서 오금이 저리도록 와 닿는것으로는 극한 상황에서도 보여준 여유라고 할수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명사수라고들 말합니다.하얼삔역에서 모두 6발의 권총을 쏘았는데,그 중 세발이 죽이고자 했던 이등박문(이토오 히로부미)의 급소에 모두 적중시키고 죽이고 싶지 않았던 세 사람은 각기 급소를 벗어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명사수이기 때문에 그렇게 쏠 수 있었다고 하겠지만 명사수이기 이전에 그 긴박한 상황에서 유유히 맘먹은 대로 쏠 수 있는 여유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의 인간적인 매력인 여유는 한만 국경에서 의병을 지휘했을 때에도 드러났습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의병이 잡은 일본군 포로들을 유유히 석방하고 있는데서 눈길이 머물게 됩니다.

    "너희들은 일본국의 신민들이다.러일전쟁을 일으킬때 너의 임금님이 대한의 독립을 굳게 약속해놓고서 침략을 감행한 것은 이등박문같은 암금님의 뜻을 받들지 않는 난신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포로들을 설득시키고 설득이 되면"내가 너희들을 풀어줄테니 일본에 돌아가 그 난신적자들을 소탕하라"고 이르고 석방해 주곤하셨다고 합니다.어떻게 보면 극한 대치상황에서 바보스럽게 보일수도 있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에도 이정도의 기품과 호탕한 여유를 지닌 애국지사 한분이 계신것이 돌이켜보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그의 여유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석방돼 돌아가는 일본군들에게 총을 빼앗긴 채 돌아가면 군법에 걸려서 형을 받을것을 염려하여 총을 돌려주면서 포로가 됐다는 사실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까지 타일러
    보냈다고 합니다.


    사람 백명을 죽이는 것보다 사람 한명을 살리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불현듯몸안에서 폭발하는 살기를 사회생활중에 수없이 발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깨서는 독립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조차 여유와 인간미로 적국병사의 생명일망정 하찮게 여기지 않으셨다는 데서 숙연해집니다.

    지금의 현실은 의사의 의도와는 무관하고 오히려 살벌한 사회문화가 보편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전쟁이라는 표현이 난무하고 프로가 아니면 죽어야 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즐겁게 생활하며 살아가는 것인데 아무래도 무엇인가 주객이 전도되어 아무 생각없이 떠밀려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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