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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티크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 있었다. 더군다나 많은 돈을 주고 누군가가 쓰던 옛날 물건을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여기던 때였다. 광택이 반질반질 나는 새것을 가지고 싶어하고 낡고 오래된 앤티크는 고물로 대접받던 시절, 주현리 씨는 ‘앤틱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전문 숍을 냈고 앤티크 카페를 열기도 했다.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고 세월의 흔적이 얼룩져 남아 있는 듯한 옛것을 보면 한없이 애정을 느끼던 그녀는 17년 전 유럽의 어느 앤티크 숍에서 본 ‘의자’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고. 여행길에서 만난 낯선 나라의 의자 하나로 시작된 그녀의 열정은 80여 개라는 놀랄 만큼 많은 갯수의 의자를 모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식을 줄을 모른다.
주현리 씨는 결코 작지 않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지만, 현관을 들어선 순간부터 보이는 갖가지 의자는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침실의 화장실까지 가득 차 있는 의자들을 보며 이 집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일까 하는 엉뚱한 의문을 던져 보게 된다.
주현리 씨의 의자들은 대부분 20세기 초 유럽에서 사용했던 것. 다리의 부드러운 곡선, 패브릭과 의자 프레임이 주는 고급스러운 느낌, 장인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섬세한 장식들은 그녀의 표정만큼이나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로코코 스타일의 의자가 갖는 특징들이 잘 살아 있는 것이다.
로코코 스타일은 의자의 전성 시대에 탄생한 것인 만큼 화려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점잖은 느낌을 준다. 의자 역시 생활 용품으로 그 시대의 모습들이 담겨져 있어 재미있다. 여성들의 풍성한 드레스를 고려하여 팔걸이가 뒤쪽으로 위치한 것이나 귀족들이 목재를 선호하여 월넛을 사용하다가 수출이 금지되면서 마호가니가 사랑을 받게 되는 등 의자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이야기가 솟아난다.
‘이 의자에는 어떤 사람이 앉았을까?’, ‘이 의자는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은 모양이네’ 하며 의자 하나하나를 보며 소리는 없지만 서로간의 대화와 공감이 오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의자는 그냥 다 똑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사람마다 제각각 얼굴 생김새가 다르잖아요. 의자 역시 마찬가지예요. 마치 사람이 표정을 짓는 것마냥 의자 속에서도 슬픔이나 기쁨, 다정스러움, 외로움 등 감정이 살아 움직인답니다.”의자와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주현리 씨.
요즘은 혼자만이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과 함께 의자의 아름다움을 나누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한다. 얼마 전에는 10년 넘게 의자를 그리는 화가 손진아 씨의 그림과 그녀의 의자들을 함께 전시했었고, 영화의 소품으로도 의자들이 등장했다. “ 내가 좋아서 하나둘씩 모으는 것이다 보니 애정이 각별하거든요. 예전에는 의자를 팔고난 뒤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가슴 속이 텅빈 것처럼 마음이 쓸쓸하고 자꾸만 그 의자가 생각이 나서 혼났어요. 손님에게 되팔라고 하고 싶을 만큼요.”의자와 지내온 시간, 그 속에서 사람의 정(精)과 체취까지도 끌어내어 포용하는 주현리 씨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참 행복한 의자 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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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20세기 초, 로코코 시대의 암체어 중 하나인 퍼토이.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을 위해 팔걸이가 뒤쪽으로 물러나 있다. 곡선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의도이기도 했다. 02_핑크 컬러와 작은 사이즈가 앙증맞아 보이는 의자. 벨벳 소재가 가진 화려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등받이의 곡선 프레임이나 바이올린의 머리 장식과 비슷한 다리의 스크롤 형태가 사랑스럽다. 03_주현리 씨에게는 의자 외에 앤티크한 가구들이 많다. 미니 뷰러와 디자인이 독특한 의자를 매치시켜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인형까지 어울려 유럽의 서재를 보는 듯하다. 04_방 안에는 주현리 씨가 아끼는 장식장이 있다. 키가 자그마하여 정감이 생기는 가구로 손잡이 하나까지도 미적 감각을 살려 부착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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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보는 것만으로도 곡선의 우아함과 편안함이 느껴지는 오크 소재의 2인용소파. 오랜 세원의 흔적처럼 패브릭의 빛바랜 컬러가 무척 멋스럽다.
02_동서양의 무역이 이루어지던 퀸 앤 시대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듯 의자 하나에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심플하면서도 높은 등받이의 프레임 장식은 무척 화려하다.
03_월넛으로 만든 20세기 초반의 로코코 스타일 의자. 앉는 부분이 다른 의자에 비해 낮고 등받이는 상대적으로 길쭉한 디자인이 재미있다. 겉쪽 패브릭을 간 의자이다. |
리빙센스
인테리어디자인공간의 멋진 연출을 위해서 가구나 소품이 주는 영감이나 분위기의 연출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의자나 오브제의 멋진 연출이 디자인의 감성을 강화시켜줍니다.